2003년 부산,
작년의 뜨거웠던 월드컵의 열기는 어느새 식었고 또 한바퀴 계절을 돌아 다시 여름을 맞이할 즈음
어느 한 초등학교에선 사생대회를 개최하였다.
무릇 초등학교의 사생대회는 나들이나 소풍, 야외 활동에 가까운 시간이지만
한 소년에게 있어서 이 대회는 사생대회가 아닌 생사가 걸린 생사대회라고도 할 수 있었다.
이 소년은 장차 한국의 위대한 미술가가 되려,
매일 밤과 낮으로 연필과 붓을 이용해 세상을 한 벌 더 만들어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.
이런 소년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영감, 시각적 쾌감을 안겨주곤 했는데,
그 소년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길을 가다 그 소년이 남긴 흑백의 무엇, 또는 강렬한 색채의 흔적을 눈에 담게 되면
잠시라도 그 자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앞에 마주한 또 하나의 세계에 머물다 오게 되는 것이었다.
하나의 선, 하나의 붓질이 추가 될 때 마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탄성을 자아내던 그 소년의 그림은
어느새 부산의 자랑, 그리고 수영구의 자랑이 되어 있었고
그런 그림을 전념을 기해 그려내는 그 소년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.
이날의 사생대회도 마찬가지,
간단한 소풍으로 시작된 이 행사는 더 이상 소풍이 아닌 소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
많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 잡고 발길을 사로 잡고 있었다.
이젤과 그 앞을 마주한 소년, 멀리서 보면 그 두개의 존재는 하나로 보였으며, 실제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.
이 점 하나를 기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부채꼴을 이루었고, 그 규모가 점점 거대해져서 공원을 가득채우게 된 그 시점에서는 그 어떤 소란도 벌어지지 않았다.
그 자리의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가 부각되어선 안된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 자리의 주인공은 오로지 그 소년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.
모두는 관객이 되었고 누군가는 그림을, 누군가는 소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, 누군가는 캔버스에 마찰하는 무언가의 소리를, 제각각 나름대로 그 공연을 즐기고 있을 따름이었다.
한 여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정적이던 그 광경은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조금은 경외의 영역에 닿아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.
점이 선이 되고 다시 면이 되고, 차원을 더해가며 추상이 더 이상 추상이 아니며 실체가 되어가는 그 순간,
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세상에 중첩되던 그 순간,
주인공을 마땅히 비추어야 할 핀 조명 하나만 떨어뜨려준다면 더욱이 영광스러울 그 순간
핀 조명은 아닌 것 처럼 보였지만,
모두의 눈을 사로 잡고 그 모든 시선을 하나로 이끌기엔 충분하여 핀 조명이라 해도 무방할만한 무언가가 이젤 위로 떨어지게 되었고,
공원의 지평선, 그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수평선, 이것을 가로지르는 이젤과소년
선 몇가지로 충분히 설명 가능한 그 광경에 새로운 선이 하나 추가되는 경이의 순간을 모두는 맞이하게 되었다.
그 선은 이내 곧 하나의 점이 되었고,
그 점은 소년이 5시간을 쉬지 않고 창조해낸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했으나
세상은 그 점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저항감 속에 이내 곧 비산된 하나의 점.
그 형태는 마치 한 여름 깊은 밤에 펼쳐진 불꽃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하이라이트와도 같이
널리널리 퍼져 마치 물방울에 산란된 빛처럼도 보였다.
그렇게 5시간의 공연은 드디어 마무리되었고,
그 소년을 사랑하던 부산의 시민들은 그에게 이름 하나를 붙여주게 되었는데
그것은 바로 새똥이었다.
돌이켜보자면,
도대체 한 인격을 어느 한 동물의 배설물로 칭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긴 하지만,
이미 하나의 새똥으로 세상을 통하였기에 나의 결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.